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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 구병모 본문

책 리뷰

아가미 - 구병모

웨일.K 2017. 3. 7.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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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2017년이 두달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책. 사실 위저드베이커리를 읽으려다가 못읽고 대신 고른 책이었는데, 이 책을 기점으로 구병모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읽게 되었다. 작가의 다른 이야기들도 궁금해지게 만든 책.


시작은 어떤 여자의 이야기다. 지긋지긋한 삶을 살아가다 실수로 한강에 떨어진 여자. 그녀를 구해준 의문의 남자. 겨우 살아난 그녀의 말이 뇌리에 박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게 될 것임을 깨닫는다.


"헤엄쳐야지 별 수 있나요.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 없는 물이기도 하고."


 그렇다. 우리는 헤엄을 칠 수 밖에 없다. 세상은 바닥 없는 물이기에. 태어난 이상 살아야겠다. 삶이 힘들어도, 풀어야 할 문제가 쌓여있어도, 가끔 숨 쉴 수 없게 답답해도 결국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우리 삶을 함축한 듯한 말이었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봐도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라면 살아내는 것 밖에 답이 없으니까. 우리는 헤엄쳐야 한다.


 작가는 세상의 불합리를 덤덤하게 서술한다.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의 뒷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집약을 한 인간이 겪고 있다고 한들 그것이 내 일이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 무심한 세상이 말하는 것 처럼. 

 그 덤덤한 서술이 나를 아프게 한다. 현실은 그토록 냉정한 것일까. 내일 죽을 것 같아도 오늘을 살아야하는 것일까. 


꼽아보면 세상 어디에든 흔히 있는 일이었고, 

그것이 한 사람에게 몰려 과부하가 걸리는 일도 

그리 드물지 않았으며, 

한가지 불행은 연속되는 서로 다른 고통의 

원인이나 빌미가 되기 마련이었다.


 곤은 물고기 인간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삶을 부여잡듯 생겨난 아가미. 그것은 고통스런 현실에서 살아나기 위한 도구임과 동시에 세상에서 멀어지게 되는 원인이다. 곤의 세상에 사람은 몇 없다. 강하, 할아버지, 그리고 이녕. 나머지는 온통 호수 속이다. 세상에서 한걸음 물러나있기 때문일까. 곤의 시각은 여느 인간들과는 다른 데가 있다.


 곤은 이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곤에게는 '언제 바뀌어도 이상하지 않은 임의의 이름'보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도록, 또는 눈부시게 살아 숨쉬는지가 더 중요하다. 아마 강하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도 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자신의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큰 축인 강하가 자신을 곤이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일찌감치 깨달았을 것이다. 강하는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 이름같은 것보다는 오래도록, 눈부시게 살아남는 것이 중요했다. 강하가 그에게 말했듯이.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하지만 강하는 이 점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듯 하다. 강하는 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곤을 거칠게 대하고 온갖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 강하이기에 그 점을 의식하지 않고 보았는데, 소설의 말미에서 그 이유를 알게되고는 다시금 먹먹해졌다. 곤의 이름을 지어준 것은 바로 강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강하가 곤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은 그 이름의 뜻이 곤에게 운명처럼 작용할 것 같아서다. 소설의 끝자락에서야 자신의 이름을 강하가 지어주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곤이 떠날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를 자립시킬 밑천을 준비하던 강하의 이야기를 듣고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모든걸 알았을 때는 늘 늦다. 


"이제 당신이 남의 전화를 빌려다가 사진을 찍어 전송할 곳은 그 아무데도 없어요."


 곤은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모른척 가지고 있던 희망마저 부서진다. 이 대목에서는 마치 내가 그 말을 직접 듣는 것 마냥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꼭 그 사실을 알려줘야 했을까 싶다가도. 그것이 일종의 족쇄였다면 풀어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묶여있지 않아도 돼. 너의 이름대로 훨훨 날아 멀리 가렴. 이 세상을 헤엄쳐서 더 큰 세상으로 가. 그래서 살아줬으면 해. 강하가 말했던 것처럼 


 곤은 살아간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고요해진다. 할아버지와 강하를 찾으려 물내를 풍기며 바다를, 강을 휘젓는 곤을 생각해본다. 곤의 아가미는 곤을 살게 하고, 또 살지 못하게 한다. 강하는 곤을 그리도 못살게 굴었으면서 또 살게 했다. 삶은 모순으로 가득차있다. 이야기가 끝나도 곤은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이 바닥 없는 물에서 헤엄치는 것은 비단 곤만은 아닐테다. 사람들은 모두 제각기의 아가미가 있고, 어쩌면 아주 절실히 헤엄치고, 어쩌면 그저 부유하고 있을 것이다. 그 형태야 어떻든, 그래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간다. 쏟아지는 불합리와 차가운 세상에서 물내를 품고 어쩔 수 없이. 삶은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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