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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캐비닛 -김언수

웨일.K 2017. 3. 31.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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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그 폭력성

13호 캐비닛에는 기록들이 있다. 석유를 마시는 사람들, 시간을 잃어버리는 사람들, 타임스키퍼, 손 끝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입안에 도마뱀을 키우는 사람, 고양이로 변하고싶은 사람, 몸을 공유하는 사람들, 뭐 아주 다양한,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처음엔 단편 모음집인 줄 알았다. 거의 책을 덮을 뻔 했다. 일관성 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늘 괴롭다. 한국문학을 읽다가 가끔 힘들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작가 혼자만 알고 있는 것 같은(혹은 작가'들'만 알고 있을 법한) 어려운 비유와 특유의 탁한 잿빛 문체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사색과 내면에 대한 고찰 뭐 그런 것들. 두세번은 생각해야 하는 현실 비판이라던지. 석유를 마시건 유리를 씹어먹건 그런 사람이 있다. 하고 그들을 묘사하고 끝나는 식으로 이야기가 계속 될 때 나는 솔직히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연결된다고 느낄 때서야 마음을 다잡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한 연구소에서 정말 할 일 없이 앉아 돈만 받아가는 공대리가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13호 캐비닛을 열람하면서 생기는 일이다. 캐비닛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가득차 있다. 허락없이 열람하는 것을 권박사에게 들키면서 공대리는 그 캐비닛을 관리하게 된다. 그 기록들, 이상한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연구하는 권박사아래에서.

빈정거리지 마라. 빈정거리는 것은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며 우리 삶의 어떤 불행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니 고양이로 변신하는 주문이나 묘약, 혹은 특별한 비법을 알려줄 게 아니라면 제발 좀 닥치고 있어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로지 고양이로 변신하는 마법뿐이니까.

한 남자는 고양이로 변신하게 해달라고 끊임없이 전화를 건다.  공대리는 그런 이상한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는 그녀가 고양이에게만 감정을 보인다며, 그녀 곁에 있으려면 고양이가 되는 수 밖에 없다는 남자의 말을 듣고 마음이 동해서,  그는 마법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를 찾아가기도 한다. 마법사는 고양이로 변하려면 적어도 삼십년은 걸리며, 심신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남자는 그 말을 듣고 건강을 챙기고 운동도 하며 열심히 살게 된다. 공대리의 표현에 의하면 어찌어찌 해결이 된 것이다. 

"저는 이제 행복한 삶이 뭔지 압니다. 멀리멀리 돌아서 여기까지 왔어요. 저는 고향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싶다면 가끔씩은 고향을 잊어버리고 유목민이 되어야 하죠."

한 남자는 시간을 건너뛰고 잃어버린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어느날 갑자기 아무 장소에서나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시간을 건너뛰어 어느 섬에서 나타났다. 그는 그 곳에서 결혼하고 삶을 꾸린다. 고향에 돌아가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그는 행복을 찾았다고 말한다.

사실 잘 살펴보면, 이런 특이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현대인이 가지고있는 고질병들을 에둘러 비판하는 모양새를 갖춘다.  '밤에는 잠을 자자'고 말하거나 시간을 빽빽하게 쫓기며 사는 사람들일 수록 시간을 잘 '잃어버린다'고 표현하거나. 어렴풋이 느껴지는 비판의 목소리.

특히 한 인간에 대한 무례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회식에도 참여하지 않고 말수가 거의 없고 뚱뚱하며 느린 손정은이란 직원. 아무이유 없이, 프레임이란 프레임은 다 가져다 붙이며 그녀를 헐뜯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솔직히 역겨울 정도였다. 그녀가 끊임없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며 스스로에게 자괴감까지 느끼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며 속이 느글거렸다. 마음의 허기짐은 채우기가 어렵다는 걸 알기에.

아무런 하는 일 없이 돈을 받아가며 권태와 무료를 느끼는 그와, 그것에 익숙해진 직장사람들과, 함부로 남을 헐뜯는 상사와 그에 마지못해 동조해주는 사람들. 그 풍경이 비단 책 속에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벗어나고 싶고 지긋지긋한 일상. 몰이해와 폭력이 난무하는 인간관계.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와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어느 날 삶의 중심으로 치고 들어와서 정면으로 우리를 노려볼 때가 있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이질적이고 이종적인 것들은 우리 곁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우리는 세계라는 복잡한 플라스크 용기 속에서 그들과 같이 버무려져 있는 것이다.

그런 삶에서 캐비닛 안에 존재하는 기록들은 너무나도 허무맹랑하게 다가온다. 전혀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이 정말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있냐고 묻는다. 혹은, 정말로 그것이 나와 상관이 없는가? 우리는 한 세계 속에 함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 보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없는 일로 치부할 수 있는가? 

끝무렵에 가면 캐비닛 속 키메라 기록물을 원하는 한 기업에 의해 공대리는 고문을 당한다. 전혀 있을법 하지 않은 이야기. 평소의 그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법 한 일을 직접 겪는 공대리는 13호 캐비닛의 또 다른 기록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지도 모른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 하지만 그게 정말 말이 안되는가? 그것은 그것을 실제 겪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 말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읽다보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는 흔적이 많다. 바쁘게 쫓기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말히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하지만 효율적인 삶이라니 그런 삶이 세상에 있을까. 혹시 효율적인 삶이라는 건 늘 똑같이 살고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기억할 만한 멋진 날이 몇 개 되지 않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불안한 존재다. 모든것을 분류하고 나누고 흘러가는 시간을 나눠 24시간으로 만들고, 매 시간은 다음날 반복되고, 매 계절이 반복된다고 주장하며 앞을 예측하려 든다. 그래야 불안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예상가능한 삶이란 지루하다. 효율은 사람을 메마르게 만든다. 여유는 게으름으로 치부되는 삶. 매일 반복되는 삶. 하루는 언제나 다르다. 한 순간도 같지 않다. 우리는 순간을 살 필요가 있다.

'절대시간이란 없다. 모든 존재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간을 가진다.'

거창하게 아인슈타인의 이론까지 들이밀 것도 없이, 사람은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각자 걷는 속도가 다르듯이, 삶을 사는 속도도 다른 것이다. 사회가 우리에게 인생의 계획을 쥐어주는 것이 못내 불편하다. 한 번 사는 삶 마음대로 살아보고싶다고 하면 어린날의 치기일까?

그저 그렇고 그런 아이였다. 나의 열다섯은 그랬다. 하지만 그저 그렇다는 것이 뭐가 그리 나쁜가. 이 세상은 온통 그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세상에 대한 공대리의 견해는 이렇다. 온통 그저그런데 뭐.  나 뿐만 아니라 다 그저그래. 세상이 그저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실 그저그런게 뭐가 나쁘냐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게 나라면 어느것도 나쁘지 않다. 그냥 내가 이런 걸. 내가 원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원해서 변해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쁜 것이 아닌가. 나는 존재자체로 특별하다. 세상에 하나니까.

존재감이 한없이 작아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고 어떤 순서도 내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호치키스나 진공청소기보다 못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가치로 존재하고 있는지를 눈치채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음 속 깊이 깨닫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오는 결핍, 불안. 그런것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두렵게 한다. 삶엔 기본적으로 두려움이 깔려있다. 거기서 오는 텐션이 너무 팽팽할 때. 다 그만두고 싶어지기 마련이고. 사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나의 가치를 내가 온전히 인정하고 사랑할 때에만 관계의 두려움에서 해방될텐데. 그게 말처럼 쉬워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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